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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축복을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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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4-16 18:42 조회3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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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축복을 나누며

 

 

루크 로드리게스

 

 

고린토 인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이야기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통해 복음의 축복을 나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고린토19:16-23 참조) 지난 7년 동안 제게 있어 복음을 선포하는구체적인 방식은 세계 CLC와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명을 통해 저는 다양한 상황과 서로 다른 문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하느님께서 제 활동을 통해 CLC를 축복하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 자신이 CLC를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축복을 받았음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CLC와의 체험으로 인해 제 내적 삶이 변화되었고, 저는 삶과 제자됨에 대한 소중한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다 나눌 수는 없겠지만 이 자리를 통해 CLC로부터 받은 몇 가지 특별한 축복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머무르라. 그러면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다.

 

페드로 아루페 신부님께서 하신 이 유명한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삶의 핵심, 즉 예수님을 향한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과분하게도 저는 이런 사랑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CLC 회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피정 안에서 또 성찬례 안에서 이 사랑은 빛납니다. 이 사랑은 각자의 삶 안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삶을 닮으려고 했는지를 회원들이 나눌 때 빛납니다. 끔찍한 상황을 겪어가면서도 굳게 신앙을 지켜나가는 모습 안에서 이 사랑은 빛이 납니다. CLC와 함께 하며, 저는 우리를 변모시키는 하느님의 강력한 현존 앞에 자신의 삶을 어떻게 내어 드릴지를 알고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사도는 예수님께서 먼저 부르시고, 당신의 이름으로 파견한 사람들입니다. 긴급히 필요한 것들로 가득 찬 세상 안에서는 활동에 매몰되거나 절망적인 상황을 돕겠다고 성급히 뛰어들기 쉽습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지속적인 도움은 이런 상황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랑이 우리 안에서 살아 있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EA로서 제가 해야 하는 역할 중 하나는 공동체의 영적 움직임을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영적 움직임들을 지켜볼 수 있는 과분한 역할을 맡는 것은 참으로 크나큰 축복이었습니다. 이런 사랑의 영적 움직임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제가 할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솔직히 하느님께서 CLC 회원들의 마음 안에 붙여 놓으신 불꽃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런 불꽃들에서 튀어나온 불씨들로 제 삶을 보다 온전히 예수님께 바치고 싶은 제 자신의 열망이 타올랐습니다.

 

 

당신의 부르심을 알아보기... 그리고 이를 따르기

 

저는 CLC가 교회 안에서 평신도 성소를 이해하며 성장하는 방식에 크게 놀랐습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평신도의 새천년이란 얘기를 듣지요. 평신도 성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고유한 길로 초창기부터 교회 안에 분명 존재해왔습니다. 하지만 성소라는 말은 주로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의 삶과 연관된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평신도들은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자리를 다시 회복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저는 하느님께서 CLC에게 교회 안에서 고유한 사명을 주셨다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바로 평신도 성소에 대해 새롭게 규정하고 우리의 이해를 깊게 해나가라는 사명입니다.

 

CLC 회원들은 평신도들의 삶을 고려한 다양한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개선해 나가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CLC 회원들은 평신도 성소의 여러 측면들과 진행 단계들, 각 단계를 온전히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CLC를 넘어서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참으로 획기적인 작업입니다. 이런 양성 프로그램들은 교회 안에 있는 다른 단체들에게도 귀중한 자원이 됩니다. 또한 이들은 투신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삶의 현실 안에서 도출해 낸, 굳건한 개념적 토대를 만들어나가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받은 부르심에 충실히 살아가는 CLC 회원들은 예수회 사제로서 제 자신의 성소를 살펴보고 깊게 하는데 많은 귀감이 됩니다. 평신도 성소의 아름다움에 제 눈을 열어가면서 함께 걸어가는 이 여정은 또한 제가 수도 성소를 더 깊게 이해하고 감사할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전에도 여러 번 말씀 드린 적이 있고, 앞으로도 많이 말씀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만 CLC 회원들과 함께 함으로써 저는 더 나은 예수회원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다른 EA들도 저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냐시오 성인을 재발견함

 

예수회원들로서 우리는 이냐시오 성인이 남기신 많은 자료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런 자료들을 탐구할 수 있는 여러 기회들도 갖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선물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3수련기 동안 저는 이냐시오 영성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CLC 와 만난 지난 7년 동안 이 관심은 실제로 불꽃처럼 타올랐습니다. 저는 CLC 회원들이 겸손하게 이냐시오 영성의 카리즘의 다양한 측면들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삶과 동화시켜 나가며 핵심적인 이냐시오 성인의 기도 훈련 방식을 일상의 삶 속에서 통합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놀랐고, 숙연해졌습니다.

 

지난 몇 년간 CLCDSSE 과정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많은 것을 해왔습니다. 국가 공동체마다 DSSE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수준이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회원들이나 공동체들이 파견과 지원의 단계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DSSE의 역동- 특히 식별의 영역에 있어서는-을 살아나가는데 있어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나 공동체적 차원에서 식별한다는 것은 그저 흔히 쓰는 CLC 용어 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식별은 하느님의 뜻을 알고 따르려는 진실된 노력 안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영적 도구입니다. CLC는 각 회원들과 단위들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공동체로서 식별하는 공동체로 성장해왔습니다. 저는 CLC가 이러한 자신들의 강점을 알아보고 지속적으로 새롭고 도전이 되는 상황들에서도 적용해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CLC가 의식적으로 자신들의 체험과 전문성을 다른 평신도 공동체나 수도 공동체와 나누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사랑스러운 활동은 모든 CLC 모임이나 행사에 있어 공동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모임이나 프로그램을 끝낼 때 우리는 항상 기도 안에서 돌아보고, 내적으로 일어났던 움직임들을 살피며, 받은 열매를 정리합니다. 이것은 이냐시오 성인께서 제안해주신 기도 성찰 방식을 아름답게 적용한 것입니다. (영성수련 77) 예수회원들 역시 공동체 모임이나 지구 총회를 할 때 이렇게 하기를 제가 얼마나 바라는지요!

 

개인적으로 매일의 의식성찰을 충실히 하는 것도 CLC의 또 다른 위대한 장점입니다. 많은 회원들은 매일의 의식성찰을 통해 삶의 각 상황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 자신을 어떻게 더 맞춰나갔는지를 나눠주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바로 이 순간에도 저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만났던 이냐시오 성인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 CLC 회원들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의식성찰을 충실히 해나감으로써 CLC 회원들은 하느님과 일치하며 친밀감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제 앞에 이런 얼굴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저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이들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일상 생활의 사도적 측면

 

저는 항상 (적어도 신학적으로는) 일상 생활이 평신도 사도직의 일차적인 초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또 기관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사명은 그 체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CLC 회원들이 보다 더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우리 사회 현실에 보다 구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자주 바랍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주제에 대해서 길고 뜨거운 토론을 벌였고, CLC가 사도적으로 보다 더 가시성을 가지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면 제 CLC 친구들은 저에게 평신도 지체인 CLC 안에서 제가 무의식적으로 일종의 예수회 모델을 찾으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라고 요청합니다.

 

솔직히 저는 CLC가 사도적으로 보다 더 드러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부르시며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 안에 드러나도록 조용히,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일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하느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 되어 밝게 비춤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보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하라고 요청하십니다. (마태오 5:13-16 참조) 우리는 적절한 균형을 맞추어야 하며,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접근 방식이 더 유효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사도적으로 더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제 열망으로 인해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평신도들의 1차적인 사명, 즉 일상 안에서의 사명의 진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 안에 이런 이해가 생기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회원들과 개인적으로 만나가면서 사명에 대한 제 생각이 확장된 것입니다. 저는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나이 드신 부모님을 모시고, 하루 종일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는 회원들을 만났습니다. 제 삶과는 정말 동떨어진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회원들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에서만 나올 수 있는 신앙과 열정을 가지고 각자의 현실을 살아나가는 회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런 평신도들의 일상적인 활동 안에서 하느님 나라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CLC는 저에게 하느님의 사명이 제가 가진 제한적인 체험에 기반한 시각보다 얼마나 더 멀리 퍼져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CLC는 저에게 일상생활의 가장 보잘것없는 현실조차도 사도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통칙 83)라는 구절의 참 뜻을 보여주었습니다. CLC는 저에게 각자의 시간과 재능을 관대하게 나눈다는 의미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CLC는 저에게 사명에 대해서 성직자들의 이해와 평신도들의 이해가 어떻게 서로 보완되고, 서로를 강화시켜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따뜻한 우정의 악수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벗을 찾는 사람은 누구든지 보물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집회서 6:14) CLC는 분명 이 보물을 풍성하게 받는 은총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CLC 공동체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강한 공동체성에 감동을 받습니다. 회원들은 정말로 서로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보여줍니다. 많은 회원들은 CLC 단위 공동체가 진정한 우정을 체험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보일 수 있는 특별한 장소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우정의 보물이 CLC를 통해 저에게 주신 크나큰 은총입니다. 전혀 다른 문화와 세계관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는 것은 기쁨이었습니다. 이런 문화적인 차이들은 굳건한 우정의 끈을 맺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고 우리의 우정은 점점 자라고 있습니다. 이런 우정의 끈은 간단한 일상적인 만남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예수님의 사도라는 우리 공동의 정체성을 통해 확인되고 깊어져 왔습니다. 진정한 이냐시안의 전통에서 주님 안의 벗들이 된다는 이런 특징 때문에 우리는 참된 벗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저와 우정을 나누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빠뜨리는 사람이 있을까봐 구체적으로 이름을 나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께 여러분을 제 소중한 벗으로 항상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으며,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마음을 기억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앞으로도 늘 우리의 우정을 축복하시고, 기뻐하시길 청합니다.

 

이제까지 세계 상임위 부 EA로서 제가 맡았던 구체적인 역할이나 그로 인해 겪은 어려움은 나누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이 일 자체가 갖고 있는 본질, 즉 사제가 자신의 사명을 살아가는 평신도를 동반한다는 것 때문에 저는 실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서로 다른 국가 공동체들이 직면한 구체적인 문제들은 쉽게 해결될만한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때때로 저는 이런 공동체들을 돕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CLC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취해야 할 구체적인 단계와 관련하여 때로는 CLC 리더들과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서로 신뢰하고 이해하는 분위기에서 이런 의견들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의 초점은 현재 CLC의 상황에 대해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는 세계 CLC와 함께 한 지난 시간이 개인적으로 제게 풍성하고 영원히 지속될 축복의 원천이었음을 나누기 위함입니다.

 

친애하는 CLC 벗들이여, 제 삶 안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삶이 함께 했음에 대해 주님을 찬미하고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제가 예수님과의 관계를 더 깊게 하고 더 나은 예수회원이 되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CLC 삶의 방식에 대한 여러분의 투신을 통해 저는 이냐시오의 카리즘과 평신도 사명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집으로 초대해주셨으며 풍성한 우정을 나누어 주신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함께 해온 이 여정은 신나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며,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놀라운 일을 계속 해나가시는 동안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불을 질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루크 로드리게스 신부는 2010년부터 2016년 12월까지 세계 CLC EA를 역임했습니다.  

  이 글은 프로그레시오 1-2, 2016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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